최근 사랑니를 제거했다. 사랑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을 때 난다고 하던데, 뽑고나니 마치 그동안 쌓았던 지혜가 다 없어지기라도 한 것 처럼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무섭다. 마치 내가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격변하여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삼십대가 되기 전에는 그 두려움을 오랜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것으로 견뎌내곤 했는데, 이제는 그것조차 방법이 아닌것 같아서 현재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어떻게 견뎌 내야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잘 살아 낸다고 인생이 물거품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침에 일어나서 일찍 회사를 갔다 와서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유튜브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그걸 한다. 이 반복이 삶의 부조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살아간다. 2025년은 부조리를 견디는 해였다. 하지만 이 부조리를 견뎌내보겠다고 마구잡이로 이것저것 계획하게 되면 조금 뒤에 기회 비용을 무시한 도전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가장 끔찍했던 순간

2024년 12월 3일 불법 계엄이 있었다. 그날 새벽 죽음의 공포에 떨며 '오늘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겠구나. 그럼 나는 저곳에 나가야할까?' 그런 고민을 했다. 친구들과 동생에게 전화가 와있었다. 동생은 나에게 절대로 여의도로 가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나는 알겠다고 말하면서도 옷을 주섬 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막상 길거리로 나와서 여의도를 갈지 말지 고민하며 정처없이 동네를 떠돌았다. 고민이 길어질 수록 두려움도 점점 커져갔다. '어쩌지? 내일 어떻게 해야하지, 출근은 해야하나?' '내가 생각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저항해야하나 순응해야하나.' 수많은 질문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유튜브로 상황을 지켜보다가 오전 4시쯤 졸음을 이길수 없어서 잠들었다. 다음날 내가 생각하는 끔찍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아침 출근을 한다는게 감사했다. 만약 그날 누군가 계엄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면 우린 서로 원수가 되어 결코 풀어낼 수 없는 엉켜버린 실타래를 놓고 누군가의 이익을 대변하며 실체 없는 싸움을 했을 것이다.

AI

AI 성능이 좋아지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하게 되었다. 건들지도 못했던 마이그레이션을 2주만에 낼 수 있었다. 어플리케이션이 문제 없이 동작하면서 대규모로 라이브러리 교체를 하는건 쉽게 시도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짧은 시간에 대규모 마이그레이션을 하는데 AI가 없었다면 성공적으로 마칠수 없었을 것이다.

AI와 대화를 하면서 어떻게 AI에게 내가 반복적으로 명령을 내리지 않더라도 AI가 항상 내가 의도한 똑같은 결과를 낼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생겼다. 결국 실수를 계속 바로잡고 그것을 AI가 읽을 수 있는 형태를 기록하고 레퍼런스를 쌓아나가는게 중요하다. 어느 순간이 되면 Redux 마이그레이션 진행해줘라고 하면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뚝딱 만들어준다. 테스트도 AI가 작성해주기 때문에 1000개 정도의 TCE를 자동화를 해서 60%를 자동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동화를 한것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지속성 있게 관리할 수 있느냐가 과제가 되었다.

AI를 사용하면 이전에는 상상만 하던 것을 실재로 개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레포트 페이지는 실재 결제를 해야 데이터가 올라오는데 그간 레포트에 더미 데이터를 올려주는 기능이 없었다. 그래서 3일 동안 가짜 결제 데이터를 대량으로 만들어주는 앱을 개발했다. 이것도 어떤 API를 사용해야 내 목적에 맞게 데이터를 생성할수 있는지 헤매지만 않았다면 하루만에도 개발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필터에 대응하는 데이터를 생성해서 레포트 페이지를 테스트 할 수 있었다. mock 데이터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mock 데이터의 단점은 몇백건이 넘어가는 데이터를 클라이언트 어디엔가에 가지고 있어야하고, 실재 서버에서 데이터 서빙을 할 때 에러가 나는지 여부도 점검할수는 없다. 그리고 데이터 형태가 변경되면 그것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곳을 수정해야한다. 이렇게 테스트를 하면서 레포트 UI를 점검하고 결제 데이터를 생성할 때, 에러가 발생하는 부분을 잡았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개발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잘 활용하고 있고, 새로운 레포트 페이지를 만드는데 바로 대량의 데이터를 생성해서 UI 동작 여부와 서버에서 실재로 데이터를 올바르게 서빙해주는지를 살펴볼수 있었다. PRD에 요구사항을 잘 적어놓고 업데이트 해주면 수정도 별탈 없이 할 수 있다.

작년 2월부터 AI 성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과 달랐다. 코드를 거의 작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들었다. 너무 편했지만 한편으론 두렵다. AI 성능이 좋아질수록 나는 더 많은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어 더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자리가 위협받는 느낌이라 불안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 없다'의 결말을 떠올려보면 미래에 나는 혼자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 할리웃영화의 미래를 그린 장면은 대부분 인간이 관리자이며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계를 관리한다. 인간이 인간을 부리기위해 기계의 하수인 노릇을 하지만 그래도 인간이 쓸모가 있는 시대다. 하지만 어쩔수가 없다 마지막 장면은 평범하지만 오히려 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고 생각을 한다. 거기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종말을 무기력하게 받아드릴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 그런 불안함이 현실이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직 그 날은 오진 않았다. 예수님도 2000년 전에 금방 오실 것처럼 말씀하셨다. 심판의 날은 온다고 다들 말하지만 그 날이 언제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당장 내일이 될수도 있고 1년 뒤일수도 있고, 내가 죽기 전까지 안올수도 있다. 그러니 아직 시간이 있을때 공부를 하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반응하기

작년 6개월간 장편 시나리오를 쓴다고 온 힘을 다 쏟아냈다. 거의 매일 시나리오를 생각했던 것 같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피드백을 받고 다듬었다. 하지만 안나올때는 쥐어 짜도 나오지 않았다. 두 장 쓰고 세 장 지울 때도 많았고, 피드백 받고 나서 합평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허리를 잘라 전부 버리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6월에 장편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영화를 할때도 이렇게까지 열심히 글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 취미로 뭘 하려는데 이렇게 진지하게 글을 써버리다니. 시나리오 완성이란 목표를 이뤄내고 나니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 후에 생각이 닫는대로 경력 없는 신인이 받을 수 있는 투자 환경을 찾아보았다.

결론적으로는 영화 제작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시나리오 집필을 시도했고 완성이라는 영역에 실재로 도달했다. 이제 장편 시나리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어떻게 시작하는지 헤맬 때는 어떤 방법으로 해결을 해나가야하는지 약간은 감을 익혔다. 그러니 이전보다는 수월하게 써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도달해보면 그 다음은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나같은 성격 유형은 현실 감각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현실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 운동이 좋다고 했다. 별로 귀담아 듣지는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운동은 내가 실재로 뛸 수 있는 거리와 시간을 몸으로 알게 해준다. 차오르는 숨과 떨리는 근육, 끝나고 난 뒤 뭉쳐진 근육을 풀어주면서 내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해준다. 뭐 나쁜쪽으로 이야기하면 한계를 짓는다고 볼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계획이란걸 세우게 해준다. 시나리오는 현실 감각이 조금 있는 상태에서 썼다. 어떻게 하면 직장을 다니면서 다른 프로젝트를 하면서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실현한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26년은 영화의 날을 한달에 두번정도 갖고 하루 종일 영화만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제작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써야할때가 있었는데 내 자신의 세계관의 깊이와 넓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손가락으로 힘줘서 누르기만해도 반으로 쪼개지는 합판 같았다. 그러니 조금 더 생각의 정원을 가꿔보고자 한다.ㄴ

회사

회사에서 일하는 방법과 마음이 잘 맞은 동료가 퇴사를 하게 되면 아쉬움이 크다. 왜 그 사람은 퇴사를 했을까 대화를 나눠보곤 한다. 그러면 대부분 자기 자신의 향상심을 회사 안에서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이직을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런 향상심은 회사 내 개발 문화를 만들어가는 구성원들이 대화를 통해 채워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한다. 개발 문화는 그 회사의 기술팀이 함께 일을 하고 먹고 마시면서 어우러져가며 자연스럽게 쌓이는 관습이 정제되어 시스템이 되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람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문화도 변한다.

QR오더를 개발하면서 도메인 지식, 기술적 성장, 일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 그리고 함께 고민하고 달렸던 동료와 좋은 관계를 쌓을 수 있었다. 회사를 마치고 밥을 같이 먹으면서 회고도 하고 프러덕트의 개선점에 대해서 논의하며 제안서를 쓰기도 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촉박한 일정이었고 야근도 많이 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다만 서로 자주 이야기를 하다보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신뢰로 바뀌는 순간이 있었다.

26년은 그간 회사에서 쌓았던 신뢰 자본을 투자하기로 했다. 결국 뭔가 만드려면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하고 누군가는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준다면 에너지를 투자해서 좋게 개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공동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계 에너지를 쏟아 부을 만큼 나에게 중요한 공간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조금 안전하다고 느끼는 분위기에서 제품에 대한 자기 의견을 무심코 꺼내더라도 안전하다면 조금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는 나의 이상이다. 내가 상품이 좋다고 그 상품에 투자 한다고 해서 상품이 잘 팔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은 모든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에서 출발한다.

나는 현재 회사 조직 문화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팀 리더에게 이런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팀원들에게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이야기를 했다.(수많은 시간동안 수만은 과정과 확인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팀과 팀이 점심 시간에 돌아가면서 밥 먹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감사하게도 우리 팀은 긍정적으로 받아주었다. 다른 팀에게 점심 약속을 제안할때 정말 떨렸다. 하지만 어찌됐든 밥 먹자고 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지났다. 모든 팀과 한번씩 점심을 다 먹었다. 현재까지 이게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회고 때 모든 사람들 앞에서 후기를 남기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돌렸던 설문지를 열어 결과를 확인하고 후기를 적어야겠다.

나에 대하여

나는 어떤 인간인지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던 한해였다. 내 과거 일기를 보면 사건이 뭔지는 적혀있지 않고 감정만 적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간 일기를 보면 미친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25년부터 일기를 쓸때는 항상 어떤 사건에 의해서 감정이 촉발됐는지 기록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자기 검열이 매우 심한 인간이라 일기에도 내 생각을 솔직하게 못적는 경우가 많다. 나는 자기 표현을 하는데 매우 서툴다. 대표적으로 글에서 검열을 많이 한다. 계속 이런 표현은 조금 그렇지 않나. 너무 나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 줄을 긋다보면 글을 쓰지 않게 된다.(요즘은 문장을 이어나가는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자기 표현에 검열이 심한건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꾸며내려고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행위는 요리랑 비슷한것 같다. 맛을 보면 안다. 2025년 초에 나는 어떤 한 사람을 통해서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나 스스로 잘 모른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그냥 내가 어떤 인간인지 말을 해보려고 하면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말이 주절 주절 많다. 거기엔 핵심이 무엇인지 가끔 나도 잃어버릴때가 많다. 말을 하다 길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조용해지려고 했다. 약속도 두 번 이상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고, 집에서 혼자 기도하고, 생각하고 책 읽는 시간을 가지려고 많이 노력을 했다. 생각보다 나 차분한 사람일지도.

2025년도 가장 의미있던 일은 AI도, 개발 경험도, 영화 시나리오를 쓴 것도 아니다. 나에 대해서 내가 처음으로 돌아본 일이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성이란 개념이 점점 달라져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것을 차분히 견뎌내야하는 것도 나에게 주어진 과제다. 26년은 조금 더 조용하게 시간을 쓰려고 한다. 나와 대화 그리고 침묵. 작년보다 올해는 더 나의 내면을 바라봐야겠다. 그곳이 어둡던 밝던 개념치 말고 진실되게만 바라보면 좋겠다. 내 안에 어둠이 있다고 내가 어두운 사람도 아니고 빛이 있다고 밝아지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꼭 발견한대로 행동하지도 않고, 항상 긍정적이지도 않다. 그냥 서로가 서로에게 항상 부족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서로가 있기에 인간은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너무 혼자 진지해지지 말고 사람들과 함께 낄낄 거리면서 살되 그냥 나 자신을 바라보는데 조금은 진심인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게 나의 태도가 되면 좋겠다.